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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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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빛 작성일20-12-22 18:05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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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1914년 12월 24일, 106년 전 오늘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5개월 정도 지났다.
두세 달 지나면 끝날 것이라던 예상을 훌쩍 넘기고 맞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가깝게 대치했던 서부 전선에서였다.
양측 병사 모두 참호에 몸을 숨기고 상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구조였다.
적군의 참호는 불과 수십 미터 앞에 있었다.
추위와 싸우며 쪽잠을 자고 힘겹게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악조건이었다.
참호 밖에 쓰러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힘든 극한의 전쟁터였다.
피아(彼我) 할것 없이 모두가 지쳐 있었다.
그때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온 것이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총소리가 멎었다.
얼마만의 휴식인가?
양측의 병사들은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편지를 썼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도도 했다. 평화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빨리 전쟁이 끝나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신에게 간구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한 독일군 병사가 노래를 시작했다. 물론 참호 안에서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병사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혹독한 추위도, 방금 전까지의 공포도 잊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코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영국군도 다르지 않았다.
적진에서 들려오는 캐롤에 함께 빠져 들었다.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 이 상황에서 성탄의 의미는 무엇인지 복잡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한 영국군 병사는 백파이프 연주로 독일군의 노래를 받쳐 주었다.
적군과 적군이 함께 호흡을 맞춘 것이다.
기적이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큰 기적이 이어졌다.
노래를 마친 독일군 병사가 참호 밖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손에는 총 대신 전등불로 밝힌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서였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자살 행위였다.
영국군 참호를 향해 걸음을 뗐다. 죽음을 무릅쓴 행동이었다.
양측 참호 모두에 무거운 긴장감이 돌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영국군들도 이내 경계심을 풀었다.
독일군의 표정과 몸짓에서 사랑과 평화로 이 땅에 온 아기 예수를 떠올렸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지만 양측 병사 모두 참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상대를 향해 다가갔다.
악수하고 포옹도 했다.
배지, 계급장, 술 등 작은 기념품들을 교환했다.
참호 밖에 널린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평화가 전쟁을, 생명이 죽음을, 사랑이 증오와 공포를 물리친 순간이었다.
그들도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에 빠졌다.
기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휴전’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전설같은 실화였다.
한 곳에서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유럽 전역의 전선 여기저기서 있었다.
모두 자연발생적이었다.
2005년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3국이 합작 영화로 만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아쉬운 점은 그것이 하루의 휴전, 하루의 기적, 하루의 평화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그들은 다시 총부리를 겨눠야 했고, 대부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이듬해 크리스마스에도 그 다음해 크리스마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보면 우리네 삶이 전쟁터 병사들이 견뎌야 했던 하루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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