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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컬럼

백의민족(民族)과 성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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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빛 작성일23-08-20 17:49 조회3,1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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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민족(民族)과 성결운동
백의민족(白民族)은 우리 한국민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발달된 염료 (染料)가 부족하기도 하였지만 우리 민족은 흰옷을 좋아 하였습니다.
이런 습관은 긴 역 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 문헌인 위지 (魏志) 동이전(東夷 傳)에는 우리 민족이 부여 때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이웃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는데 점차로 우리 민족 자신이 스스로를 가르쳐 백의민족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의 복음이 처음 전해지기 시작 했을 때 많은 외국인들의 눈에 띄었던 흰 옷은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특색으로 비치었습니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때 일본의 종군 목사로서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성결운동의 지도자 나까다 쥬지는 곳곳에 한국인들 이 흰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처음에 한국인들은 매우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대 부분은 그 흰옷이 때에 절어 더러웠습니다.
나까다 쥬지는 이것을 보며 한국인의 흰 옷과 성결(聖潔)을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때로 찌들어 더럽게 된 옷은 마치 타락한 신자 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더럽게 된 흰옷은 한번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았으나 계속 범죄함으로써 성결을 잃어버린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까다는 겉으로 볼 때에는 깨끗한 것 같으나 내면의 모습은 추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한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07년 5월 미국의 성결복음 선교사였던 카우만 부부와 길보른은 정빈, 김상준과 함께 한국에 와서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현재는 성결교회)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한국을 방문한 길보른의 눈에 매우 인상적인 것은 역시 흰옷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나까다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길보른은 흰옷은 깨끗하고 훌륭한 옷이지만 한 번 더러워지면 다른 옷보다 더욱 추하다고 말하면서 한국 여인들의 주된 임무는 바로 이 더러운 흰옷을 깨끗하게 빨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길보른 선교사의 눈에는 여인들이 시냇가에 나와서 방망이질을 하면서 빨래하는 모습이 매우 이채로웠던 것 같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길보른 선교사는 성결운동은 이 여인들의 빨래와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여인들이 더러운 옷을 원래대로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빨래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도 하나님께서 원래 만들어 놓으신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본은 흰옷을 입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하여 금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이 여기에 따라오지 않자 흰옷을 입는 것은 일제에 대한 항의의 표시라고 하여 탄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말 일본의 모진 박해 속에서도 한국 기독교 신자들이 마지막 소망을 걸었던 것이 바로 흰옷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는데, 이때 흰옷을 준비해서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믿음과 소망 때문이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흰옷을 입음으로 일제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순결한 신앙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흰옷은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결한 신자만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히12:14)
요즈음 한국교회에 성결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백의민족입니다.
그러나 내면이 바뀌지 않고 겉옷만 흰옷이 되어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심령의 흰옷을 입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음으로서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두 번째 성령의 능력으로서 우리 내면 속에 도사리고 있는 내적인 죄의 성질, 즉 죄악의 쓴 뿌리를 뽑아냈을 때에 비로서 가능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성결운동은 백의민족을 만드는 운동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한번 진정한 의미의 성결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박명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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